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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C 교회개척연구원 설립배경글

교회개척연구원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교회개척 사역과 함께 시작한다.

나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허철선 (Charles Betts Huntley) 목사와 함께 선교사역을 했다. 이 경험은 내 생애에 걸쳐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늘 예배드리는 이곳은 허철선선교사 사택으로 기념되지만 내 마음에 세워진 하나님나라 이기도 하다.

1893년 1월 28일 남장로교,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상호 원활한 선교를 위하여 ‘장로교 선교부 공의회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Government)’를 결성하였다. 이때 -네비우스 방법론- 을 기초로 하여 10가지 원칙을 정했는데 그 원칙 가운데 의료선교는 외래 중심보다는 입원 중심으로 전개시킨다. 지방에서 온 장기 환자는 퇴원 후 심방해서 그 지방 전도사와 연결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남장로교 허철선 선교사는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사역하면서 그 원칙을 계속 실천해 왔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실 가족들은 입원한 환자들에게 전도하여 결신하도록 했고, 결신한 환자들이 퇴원을 하면 그들을 찾아 지역교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는 퇴원한 결신자들을 찾아 그 지역교회 교역자들에게 소개하고 지역교회 교인으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일했다. 이 사역은 호남신학교 입학과 동시에 시작하여 신학공부를 마칠때까지 7년을 하루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땅끝까지 이르는 거리를 순회한 것이다. 결신자 순회사역은 미국 남장로교 교회개척에 동역하는 사역이었지만 한 사람의 목회자를 양육하는 훈련의 과정이기도 했다. 선교부에서 지급하는 장학금과 사례비는 목회자로 성장하면서 남다른 복음의 빚을 지고 있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장로교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개척을 하게 된다. 신학교 재학 중에 내가 다니던 교회가 어렵게 되었다. 교회신축계획이 무산되면서 담임목사가 교회를 사임하고 떠나신 것이다. 이 일로 목사님을 지지했던 젊은층과 어른층이 분리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소한 일까지 대립되면서 함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인들은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고 젊은층들은 분립하여 나가고자 했다. 나는 교회 중요한 모든 기관을 책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거취는 중요했다. 젊은층들은 계속 나가자고 권유했고, 어른들은 나의 거취를 주시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요지부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떠나신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교회개척을 독려하러 오신 것이다. 젊은층들이 부탁하여 찾아 오신 것을 나중에 알았다.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은 내가 책임질 터이니 교회개척을 시작하라”, 오랜 시간 권면하고 가셨다. 나는 신학생으로 고민되어 교수님을 찾아 사정을 말씀드렸다. 교수님의 말씀은 분명했다. 학생신분으로 교회분립에 가담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경고성 말씀까지 하시며 적극 만류하셨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한 달 동안 기도하고 결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교회개척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포함 젊은 층 7명(교회창립위원)과 함께 기도를 시작했다. 위원중 피택장로가 있어서 그 분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오직 교회만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되고 있다. 날마다 눈물도 기도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름답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감히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교회가 분립되었다. 1979년 10월 21일

가정에서 첫 예배가 드려졌다. 나는 예배

를 인도하면서 울었다. 울면서 설교했다. 함께했던 모두가 울었다. 새로운 교회를 시작한다는 것은 피값을 치러야 하는 아픔이 따랐던 것이다. 다음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민주화를 위해 많은 피가 희생되었듯이 교회는 더욱 그러했다. 새롭게 시작된 교회 성도들은 이단아 취급당했고, 많은 비난도 따랐다. 예수님처럼 깃들 곳도 없고, 머리둘 곳도 없었다. 벧엘교회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교회는 어려움이 더할 수록 힘을 모았고, 성도들의 믿음은 더욱 분명하게 교회의 기초를 다졌다. 점차 교회의 윤곽이 드러났다. 교회 설립을 반대했던 전남 노회는 많은 언쟁끝에 교회 설립을 허락해야 했다. 비로소 담임목사님도 모실 수 있게 되었다. 교회는 창립위원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움직였고, 목사님은 성도들이 일할 수 있도록 영성을 일깨워 주셨다. 뿐만 아니라 목사님 가슴에 품었던 비전도 확실하게 보이셨다. 시간이 갈수록 선포했던 비전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갔다. 교회가 변화하며 성장한 것이다. 36년이 지난 지금 광주지역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었다. 광주벧엘교회 성장과 함께 벧엘교회 이름으로 재생산된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고전3:1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다는 밀씀이 이 교회에서도 적용이 되었다. 나는 교회를 심는 일에 시작의 사람이었지만 잘 모르고 지내왔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젊은 시절 교회개척의 사명을 알지 못하는 때에도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나는 신학을 마치고 전도사로 두 번째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개척한 경험이 있기에 주저함 없이 시작했다. 시작은 잘했는데 집안 사정으로 가졌던 비전을 접어야 했다. 첫 삽을 뜨고 교회를 세웠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시찰회 지도와 중재도 있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건물이 필요한 교회와 병합하고 남문교회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당시 개척한 교회 이름은 없어졌지만 교회개척에 함께했던 사람은 지금도 같이하고 있다. 당시 교회개척에 함께했던 한순진 전도사는 현재 미국 남침례교 목사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지금 한국교회를 지원하는 KTEE (Korea Th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 디렉터로 성실하게 사역하며 세계 선교지역을 순회하며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 한순진 목사의 KTEE 세미나가 있으면 먼 발치에서 격려하며 바라만 보았는데,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TEE를 이해하게 되었다. TEE는 랄프윈터 박사가 과테말라 선교지에서 시작했던 것이며, 그 모델로 윌리엄 케리 국제대학과 세계선교센타가 설립된 것이다. 지금도 세계선교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활동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 랄프윈터 박사 이론이 TEE교재에 담겨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후 TEE세미나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다. 33년전 교회개척을 위해 함께 했던 전도사가 지금 ‘교회개척연구원’ 개원예배를 준비하며 후원하고 있다. 나도 한순진 목사의 간곡한 요청으로 KTEE 한국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세 번째 교회개척을 하게 된다. 1988년 목사임직 받기 직전 광명교회에 전도사로 부임을 하였다. 교인들의 형편이 어렵기도 했지만 은사의 다름을 극복하지 못하여 기존교회에 합류하지 못하고 모이는 가정교회였다. 예배처소를 마련하지 못하여 토굴을 파고 이슬을 피하기 위하여 비닐로 지붕을 삼고 기도에 전념하는 교인들이었다. 처지는 어려웠지만 날마다 모이고 기도하는 교회이었기에 생명력이 있었다.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로 기사와 표적을 많이 경험했다. 임시예배 처소를 마련해주는 후원자도 있었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말씀하신 손길을 경험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로 봉선동에 작은 교회를 건축하고 큰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지금의 봉선교회 이야기다.

나는 농촌교회에서 2년 반 동안 목회한 적이 있다. 농촌에 있는 김제명량교회는 동료목사의 고향교회이다. 동료목사는 본 교회 예배를 마치고 먼 거리 고향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사연은 역사가 있고 많은 목회자들을 배출한 훌륭한 교회이었는데 장로님 두분의 분쟁으로 교회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는 목사님 권유를 받고 먼 거리를 왕래하며 예배인도를 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사역이 2년 반 세월을 보낸 것이다. 교회가 염려되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되었다. 두 분 장로님은 헌신하는 일에 경쟁을 하였다. 삶의 남은 날을 계산하며 세월을 아꼈다. 역시 좋은 전통을 가진 교회는 달랐다. 매일 먼 거리 몸만 오갔는데 교인들은 담임목사로 이름을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새로운 목회경력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교회개척도 중요하지만 교회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일 또한 교회개척 이상의 의미를 깨닫게 했다.

이제 지금 시무하고 있는 예수사랑교회이다. 2001년 전임 목사님이 은퇴를 기다리는 시점에 부임을 한 것이다. 전에는 활동적인 조직교회이었는데 부임할 때는 노인 몇 분만 남고 모두 떠났고 떠나고 있었다. 젊은이라고는 딱 한 가정이었다. 최고의 설교자 권위를 가지셨던 목사님의 은퇴와 함께 성도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떠난 것이다. 나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고 주저앉은 교회를 일으킨다는 것은 새로 개척하는 것 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교회를 외면하고 도망가기도 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7] 하늘에 올라가도 스올에 자리를 펴도 그 분은 거기 계셨다. 다시 돌아와 교회 이름도 새롭게 하고 가장 좋은 장소를 택하여 교회를 신축도 했다.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고 교회성장의 기대도 품었지만 생명력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분명했다. 목회자가 주도적으로 교회건축을 하다보니 성도들이 힘을 잃은 것이다. 새로운 일군이 세워져도 교회의 주권이 사람으로 시작된 것을 분명하게 알아 차렸다.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의 자주적인 활동을 기대하고 변혁을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교회개척의 어려움을 뼈속깊이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힘들고 어려운 목회였지만 나름대로 의미를 찾는다면 잠시 부임하여 함께 일했던 교역자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세 개의 교회가 개척되어 지금도 열심히 사역하고 있다. 교회적으로 지원은 못했지만 함께 사역하는 동안 개척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하고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참으로 귀한 일이다. 이 보다 더 귀한 일은 없다고 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 교회를 지속하여 섬기지 못하고 아직도 교회개척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호남지역을 순회하며 교회개척을 하던 선교사들의 영성이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것이다.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 로버트 클린턴 (Dr. J. Robert Clinton) 교수의 long time develop-ment에 비추어 보면 나의 개발된 은사는 ‘교회개척’ 이었고 평생사역으로 정립되어 ‘교회개척연구원’ 설립 배경이 된 것이다.

미국 풀러신학교에서는 타문화 선교를 위하여 교회개척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교회와 신학교는 교회성장 이론에 밀려 교회개척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 개척된 교회가 병합하고 문을 닫는 사례가 많아 교회개척을 주장하는 것이 시대적 착오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도 교회는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성장해야 한다. 성장한 교회는 교회를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도 예수께서 세계 도처에 교회를 세우신다. 거룩한 체험을 간직한 부활의 증인들과 함께 세워가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영원하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유일한 공동체이다. 전쟁과 재난이 쓸고 간 빈 터 위에도 교회는 다시 세워져야 한다. 개척교회가 어렵다고 문을 닫고 돌아서도 그 문을 다시 여는 개척자가 있어야 한다. 이런 개척자들을 위하여 교회개척 전략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은 내게 숙명이다.

여리고 성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두려운 마음도 있다.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해야한다는 음성이 들린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줄 많은 동역자가 필요하다. 또한 그들이 있기에 용기를 가지고 출발한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

그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도 세상을

위하여 외롭게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나는 오늘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여!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눅15:19]

이글은 “A missiological description of the Honam church planting strategies of the Southern 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Church growth perspectives of Donald McGavran.”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 D. Min. in Global Ministry. 학위 논문 연구 배경에 기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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